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아닌 워헬밸(Work-Health Balance)

“왜 일을 그만두지 않아?” “왜 요양을 떠나지 않아?” “왜 그렇게 계속 일을 하고 살아?” “아프다며, 휴직 좀 하지 그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꾸준히 들었던 이야기예요. 사람들은 질병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저에게 그만 일하고 “쉬어라”라고 조언하곤 했어요. 물론 활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면 쉬기 위해 휴직, 휴가도 가고, 집에 틀어박혀 며칠을 보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을 그만둘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대체 왜일까요. 지금 다시 돌이켜 봐도 질병의 굴레 속 고통의 터널은 계속 이어졌고, 몸의 통증과 컨디션은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화되었는데, 왜 저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10대 시절의 주치의는 사회생활이 힘든 몸이라고 경고했어요.

20대 때는 사회생활 후 1년의 시간을 휴직까지 했었어요. 그렇게 1년을 호주에서 요양이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죠. 하지만 젊음이 아름다운 건 두려움이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자신의 몸에 대한 자만이 가장 넘치던 시절이기도 했어요. 건축 일을 하며 밤을 새우던 생활이 결국 휴직까지 이어졌지만, 복귀 후에도 저는 더 강해져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밤을 새우면서도 낮에는 요가를, 저녁에는 한 시간씩 PT를 받으며 젊음을 연료 삼아 스스로를 더 태워버렸어요.

30대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다양한 증상과 질환이 늘어갔어요. 마치 둑이 무너진 것처럼, 병원에 가면 늘어나는 진료과와 질병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어요. 하지만 역시나 30대의 저도 제 즐거움이 먼저였어요. 1년에 열 번 이상 비행기를 타며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갔고, 그 모든 걸 일을 위한 인사이트 혹은 휴식이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죠. 활동을 줄일 생각도 하지 않고, 생활 습관을 바꿀 상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병원과 일, 그리고 여행에 몰입되어 살았던 시절이에요. 저에게 휴식이란, 여행으로 쌓여가는 피로를 휴식이라고 착각했던 시기였던 거죠.

30대 말 가장 큰 고비를 넘기면서, 그때서야 조금씩 제 몸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그 시절 많이 언급되던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아닌, 저에게 긴급과제인 워헬밸(Work-Health Balance)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매일 10분씩 재활차 시작한 걷기는 하루 최소 5km~ 8km를 걷는 루틴으로 바뀌었고, 주말이면 종종 혼자 산에 오르고, 매주 1회 필라테스를 13년째 하는 중이에요. 물론 메디쏠라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먹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노력중이죠. 하지만 일과 건강에 대한 나만의 기준과 균형을 찾아간다는건 운동만큼 루틴화 되긴 어려웠어요.

가장 중요한 건 뻔한 엄마의 잔소리처럼 “잘 먹고, 잘 자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기”지만, 일을 하다 보면 사실 그 균형은 순간의 스트레스나 고민으로 쉽게 깨지곤 하죠. 그래도 자신의 몸을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기록을 해보는 것도, 루틴을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음의 두가지에요.

1. 자신의 상태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 노력을 덜 하지 않기.
2. 오늘 조금 나아진 컨디션에 건강했던 시절의 습관을 다시 꺼내지 않는 것.

말 그대로 나의 상태를 알고, 나만의 밸런스(Balance)를 찾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에요. 그리고 그 밸런스는 위로 올라가는 건(+) 정말 어렵지만,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아주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해야만 건강이라는 지표가 조금씩 올라가지만, 반대로 질병을 겪거나 지병을 가진 분들이라면, 아주 조금만 방심해도 그 밸런스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이미 경험해보셨을 거예요. 저 역시 수많은 경험을 통해, 제 일과 삶의 건강 밸런스를 아주 적은 오차 범위 안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34살 때, 심한 공황장애를 겪었어요. 결국 공황장애 약의 부작용으로 약을 중단하면서 급격하게 증상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그 당시 무방비 상태로 겪었던 증상에 크게 놀라 외부 활동을 모두 줄이고 스스로 움츠러들었어요. 그때 서울 혜화동의 한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주치의께서 제게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떠올렸을 때 가장 행복한 게 무엇인가요?”

“저는 건축 설계를 하고, 쉴 때는 여행하는 게 가장 좋아요.”

“그럼 그걸 계속하세요.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이 터널을 빠져나오느냐 마느냐도 결국 본인의 의지가 매우 중요해요. 사람은 가장 좋아하는 걸 할 때 가장 쉽게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몸이 아파도 절대 일을 중단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일은 곧 행복이니까요.”

사실 주치의의 그 말은, 30대의 저에게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게 해준 중요한 희망의 메시지였어요. 결국 저는 공황장애 약을 손에 쥔 채 비행기에 올랐고, 숨이 막혀오는 순간들을 버텨내며 그때 가장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항에 도착했고 2년간의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시,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워헬밸(Work-Health Balance)을 이루는 데 10년이 조금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저 자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시행착오와 실행의 과정 속에서 많은 책과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물론 나에게 적용하는건 쉽지 않았지만,

여러분의 워헬밸(Work-Health Balance)은 잘 지켜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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