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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대] 한국사람인데, 고춧가루 알레르기???

    [30대] 한국사람인데, 고춧가루 알레르기???

    먹는다는 두려움을 깨야만 한다.

    30대 중후반, 몸은 예민함을 넘어서 모든 음식과 약물을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거의 매일 항히스타민을 먹거나 스테로이드를 섭취해야 할 정도로, 입 속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게 두려울 정도였죠.

    허리디스크 수술을 한 30대 초반 이후, 공황장애부터 자율신경계 이상, 장 누수까지 매우 빠르게 다양한 민감 증상들이 연달아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 중 가장 괴로웠던 건 바로 먹는 행위였어요.

    어릴 적부터 알레르기가 많았던 몸이라, 웬만한 알레르겐은 피해서 살 수 있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그 모든 패턴에서 공식이라는 게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특히 환경적 알레르겐이 아닌, 음식이나 약물을 통한 반응들은 정말이지 적응하기 너무 힘든 증상들이었죠. 병원의 대다수의 처방약에서도, CT 조영제에서도, 심지어 지나가는 흡연자의 담배 냄새만으로도 제 몸은 매우 과민하게 반응하며 대놓고 티내기 시작했죠. 마(蒣)와 같은 특정 알레르겐에선 귓속과 기도가 막히는 아나필락시스 증상도 여러 차례 겪으면서, 입 속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스스로 매우 조심스럽게 학습된 두려움과 같은 패턴이 되었죠.

    처음 이유식을 하던 어린 시절에는 매일 고등어구이만 먹었다고 해요. 그러다 10대 초반쯤, 고등어 알레르기가 생기면서 더 이상 고등어는 못 먹게 되었죠. 토마토도 그랬어요.

    어릴 적엔 토마토를 먹으면 입 주변이 가렵고 괴로웠죠. 복숭아는 털에만 알레르기 반응을 해서, 엄마가 작게 썰어 주시면 먹는 데 문제는 없었어요.

    어릴 적 엄마의 보호 아래 알레르겐을 거르는 건 훨씬 수월했어요.

    엄마는 알레르기가 심했던 저를 위해 유기농 채소나 농약을 쓰지 않은 재료들을 따로구해 요리하실 정도로 많은 신경을 써줬죠. 실제로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한두 번 먹을 정도로, 모든 음식에 정성을 쏟아 주셨어요.

    20살이 넘어 처음 간 일본 여행에서는, 소바(메밀)를 먹고 기도가 막히는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와서 신주쿠 오피스가에 있는 응급실에 간 기억도 있어요. 그 후로 오랫동안 소바가 원인인 줄 알고 메밀을 피했는데, 15년이 훌쩍 지나서야 그때의 원인이 메밀이 아닌 소바 속에 들어있던 마(蒣)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마 가루가 들어간 율무차를 마신 후 같은 반응으로 응급실을 다녀온 이후였어요. 자연스럽게 그 후로는 끈적끈적한(뮤신) 식물성 식품은 피하게 되었고, 오크라를 통해 다시 한 번 알레르기 반응이 나왔을 때 확신하게 되었죠.

    사실 혈액검사로 확인할 수 있는 알레르겐은 매우 한정적이에요. 그래서 살아가면서 직접 경험을 통해 나에게 맞지 않는 유형이나 비슷한 성질의 식품들을 스스로 찾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죠. 제가 성장하던 시기는 더더욱 정보가 제한적이었죠. 저는 스스로 실험 하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실험에 소극적이었던거죠.

    30대 중후반으로 돌아가면, 그때 제 얼굴은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로 붉고, 고름이 흐르는 상태였어요. 코로나 이전인데도 항상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어요. 병원에서는 혈관염으로 진단하고 심할 땐 항생제를 종종 복용하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오랜 영양 실조와 그리고 잦은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인해 세포 조직들이 얼마나 약해져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어요.

    나이가 들며 섭취가 점점 제한될수록, 영양을 고려하지 못한 채 그저 반응이 없는 음식만 먹다 보니 몸은 점점 더 염증과 영양 불균형의 끝으로 치닫게 되었어요. 30대 후반에 서울에서 그것도 식품회사를 다니는 여성이 너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라니! 의사들도 모두 놀라워했어요. 다양한 음식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사진 : 2025년 12월 31일 가족의 식탁. 이젠 거의 다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먹는 즐거움, 함께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보다는, 자극이 오지 않는 음식, 반응이 없는 음식만을 찾다 보니 영양 불균형과 영양 실조 상태가 더 오래 지속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혈관염은 더 심해졌고, 채소, 밥, 김, 흰살생선 이외의 음식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죠. 첨가물을 배제하고 채식과 자연식 위주의 식사를 했지만 건강은 나아지지 않았고, 증상은 오히려 악화되었어요. 영양이 모두 무너진 상태에서는, 필요한 영양소 없이 제한적인 섭취만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었던 거죠. 부족한 영양소는 링겔로 채웠지만 효과가 지속되진 못했어요. 그 시기부터 설탕은 최대한 배제한 식사를 유지하고 있어요. 혈관염에 가장 빠르고 강하게 반응했던 것이 단 음식, 특히 백설탕이 들어간 음식은 입에 들어가는 순간 혈관을 통해 염증 반응이 즉시 나타났죠.

    다시 떠올려도, 그 시절엔 음식에 대한 즐거움이란 논할 수 없었고, 그저 반응하지 않는 음식을 먹을 뿐이었어요. 그러던 중, 지금의 메디쏠라 김형미 소장님을 만났어요. 소장님은 제가 다니던 대학병원의 임상영양팀장이셨죠. 오랜 영양 실조와 혈관염 증상으로 소장님을 만나 식단 점검과 가이드를 받게 되었어요. 소장님도 저의 상태를 심각해하시며 식단 일기를 써보라고 권유해 주셨죠.

    소장님께 메시지를 드리면서, 저는 조금씩 더 먹고 더 다양하게 먹으려 노력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소장님은 제 민감한 반응 중 하나가 고춧가루(고추장, 김치 등)가 들어간 음식이라는 것을 발견하셨고, 한동안 고춧가루도 멀리한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몸이 너무 예민해진 나머지, 고춧가루의 자극조차 버티지 못했던 상황이었는데 마치 고춧가루가 알레르겐인 것처럼 해석했던 거죠.

    *알레르겐 —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무해하지만, 특정 사람의 면역계가 과민하게 반응하여 알레르기 증상(재채기, 두드러기, 호흡 곤란 등)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 — 과, 영양이 모두 무너진 몸에서는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상황 조차 혼돈이 있었죠.

    알레르기를 피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말 그대로 알레르겐을 피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피하는 식습관 속에서 성장하다 보니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양 불균형으로 이어졌고, 저는 결국 먹지 않는 것이 가장 편한 상태에까지 이르고 말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 단순한 원리인데, 이 원리를 깨닫고 몸이 변화하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게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아쉬운 시간이에요.

    요즘은 먹고 싶다는 욕구를 온전히 꺼내려 하고, 함께 먹는 즐거움도 더 찾으려 노력해요.

    그리고 내 몸의 균형을 생각하는 영양 섭취의 관점으로 완전히 바뀌었죠.

    여전히 피하지 못하는 알레르겐이 저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이제는 함께 먹는 즐거움을 알고, 여행지에서 낯선 음식에 도전하고 싶은 용기도 생겼어요.

    그리고 우리의 몸은 영양이 균형을 이룰 때 건강이 지속된다는 것을, 저는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하루에 두~세 번, 자신을 위한 [먹는 선택의 시간]

    오늘, 무엇을 위해 드시겠어요?

  • [20대] 공간을 설계하면서 몸을 설계하는 건 잊었어요.

    공간을 짓다. 몸은 무너지다.

    10대 때 의사 선생님이 엄마와 제게 말했어요.

    “아무래도 따님은 대학에 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기는 무리일 거예요.”

    이 말이 아마도 제 20대를 더욱 삐딱하게 살아가게 한 씨앗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의 따뜻한 밥과 보살핌을 받던 10대 시절이 끝나고, 저는 말 그대로 폭주기관차 같았어요. 어릴 때부터 심각하던 알레르기와 아토피는 이제 한계에 도달해, 눈 주변에서 고름이 흐르기 일쑤였죠.

    건축과에 들어간 이후, 매일 밤샘 작업과 잦은 술자리,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을 다루면서 내 몸의 면역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사실 그보다는 건축이 더 좋았어요. 밤새 얼굴이 따갑거나 몸이 가려운 것보다 건축에 몰입하는 게 더 좋았으니까요. 금속에도, 종이 가루에도, 먼지나 진드기, 심지어 나무 가루만 닿아도 피부는 불타듯 빨개지고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밤새 스튜디오에서 모형을 만들며 보내는 시간이 더욱 값진 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10대 시절 받은 경고를 무시한 채 폭주기관차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죠. 잠은 기본으로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고, 술은 거의 매일 마셨어요. 그뿐이었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잘 먹지 않았다는 거예요. 초콜릿 하나와 김밥 한 줄이면 하루를 거뜬히 버틸 만큼 음식에는 관심조차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저는 대형 설계사무소에 들어간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쓰러지고 말았어요. 지나고 보면 그때 몸이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신호를 보냈는데, 그저 잠을 자지 않아서 그렇다고 가볍게 넘겨버렸던 것 같아요.

    20대 중반에도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요. “대체 뭘 해주길 바라죠? 몸이 제 기능을 하는 상태가 아닌데요.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철없던 저는 “호주에 다시 가고 싶어요”라고 했고, 그 길로 유배 아닌 휴식을 취하러 20대의 1년을 멈추게 되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몸은 정직하게 신호를 보내줬는데 저는 호주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그 신호를 또 잊어버리고, 결국 30대 중반까지 수많은 질환을 얻게 되었어요.

    건축을 하던 시절, 저는 공간을 만드는 데 너무 정신이 팔려 먹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자는 것도 잊었어요. 1년을 쉬고 나서도 똑같이, 아니 그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매달려 먹지도 않고 술은 더 마시고, 잠은 여전히 최소한으로 줄인 채 밤샘을 즐겼어요.

    건축이란 정교한 기초 위에 잘 짜인 설비, 구조 등 모든 시스템이 딱 맞아떨어질 때 좋은 공간이 완성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 몸을 설계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부모님이 좋은 기초를 주셨는데, 저는 점점 스스로 그 기초를 무너뜨리기 시작했죠.

    img : GPT 건축물과 몸은 참 비슷해요. 복잡 다다하고 돌봐야만한다는 사실!

    아무리 좋은 건물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먼지를 닦아내지 않으면 쉽게 망가지기 마련이에요. 우리 몸도 건축물과 참 닮았어요. 좋은 유전자를 받고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기초가 튼튼하더라도, 돌보지 않으면 방치된 건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건축하던 당시에는 전혀 몰랐어요.

    여러분의 몸은 어떤가요? 혹시 방치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저는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던 제 몸을 돌보고 이해하는 데 지난 몇 년을 보냈어요. 감사하게도 다시 돌보기 시작하니, 방치된 방을 정리하듯 제 몸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물론 이해하는 데도, 그 변화를 느끼는 데도 무척 많은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해하려 하고 보살피려 한다면 반드시 변화가 온다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몸도 공간과 마찬가지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사실!


    *깨진유리창의 법칙이란?

    1982년 3월 범죄학자 제임스 Q. 윌슨과 조지 L. 켈. 링은’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 [Porlog] 종합병원이라 불리던 아이

    [Porlog] 종합병원이라 불리던 아이

    인생을 바꾸는 결심, 여러분은 몇 번 해보셨나요?

    여러분은 인생이 바뀌는 결심을 하는 특별한 경험을 몇 번 해 보셨나요? 그 특별한 결심을 매번 같은 장소에서 하게 된다면, 그 장소는 여러분에게 어떠한 의미로 살아가게 될까요?

    저에겐 바르셀로나, 스페인이 그런 장소입니다.

    사진 : 2018년 9월 바로셀로나, 이 때 메디쏠라를 결심했죠.

    멀리 떠나와 나의 일상에서 분리되는 순간, 그런 경험들은 더욱 다양해지겠지만 나의 경험은 매우 특별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여러분들께 제가 왜 메디쏠라를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게 제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사실, 저는 어릴 적부터 다양한 불편함과 통증들을 동반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친구들은 저를 종합병원이라고 불렀어요.

    의사 선생님들은 10대의 나에게 사회생활을 하긴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20대의 저는 일하다 쓰러져 1년 넘게 쉬어야만 했어요. 30대의 저는 알 수 없는 원인미상의 온갖 질병 코드를 수집하는 단계에 이르더니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아야만 했어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저는 지금이 가장 좋아요. 통증이나 증상이 사라진건 아니지만, 저는 매우 밸런스 있는 길을 찾아가고 있어요.

    일을 매우 좋아하는 저는, 매일 어떻게 일하고, 먹고, 쉬고,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는지조차 찾아가는 데 너무 어렵고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죠. 많이도 헤맸죠. 항상 증상은 달라졌고, 매번 그 이전의 방법이 통하지 않았어요. 저는 40대 중반이 지난 이제서야 조금 제 자신에 대해, 제가 겪는 많은 통증과 일상의 불편함을 달래고 사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왜 내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반성하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죠.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이해하게 된 건 아니에요. 너무 오랫동안 저는 제가 왜 이런지 그저 궁금했어요. 이해할 수 없었죠.

    제 주변엔 훌륭한 의료진들과 오랫동안 잘못된 식습관을 알려 주시는 임상영양 전문가, 통증에 시달리는 몸을 이해하게 해주신 도수치료 선생님과 필라테스 전문가, 그리고 항상 저의 밥 걱정을 하시는 엄마까지. 많은 전문가분들의 도움으로 이제서야 일상의 균형을 찾는 데까지 이른 것 같아요.

    그게 바르셀로나랑 무슨 관련인지 궁금하시죠?

    신기하게도, 항상 통증이 심해지고 삶이 이해되지 않을 즈음, 저는 바르셀로나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20대부터 40대 중반인 지금까지 5번의 바르셀로나는 저에겐 항상 순간의 건강을 되돌려주는 기적의 장소였어요.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인생의 두번이나 터닝을 만든 결심을 한 장소이기도 하고, 그 결심 중한번이 메디쏠라를 탄생시키기도 하죠.

    2026년 5월, 저는 또다시 스페인 출장길의 비행기에서 이 글을 적고 있어요. 제가 느끼고 경험한,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인 일, 통증, 그리고 삶의 밸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누군가에겐 공감과 정보를, 그리고 그 무엇보다 제 글을 통해 일상에 작은 용기와 위로가 되시길 바라며, 진솔하게 적어볼게요.

    제 글은 저의 100% 경험을 바탕으로 적는 글이며, 저는 의료진이 아닌 점을 이해해 주세요.


    seaon •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아름다워 20살에 지은 제 닉네임이에요.

    [Seaon’s Health Profile]

    0세 ~. 현재 진행중 : 알러지, 아토피 , 알레르기성 결막염 등 권위자 (집먼지,진드기, 모든 동물, 음식, 약물 등) 아나필락시스 다수

    10대 : 중이염(완치) , 긴장성 만성변비(진행중) 간 면역 (종료)

    20대 – 아나필락시스 시작 , 알레르젠 치료 (실패)

    30대 – 섬유근육통, 허리디스크수술, 자율신경계실조증, 장누수증후군, 극심한영양실조, 공항장애, 원인미상의 다발성정맥손상(수술)

    40대 – 괴사성혈관염, 뇌동맥류, 갱년기


    [Seaon’s profile]

    MEDI.SOLA (Founder) CEO 공동대표 2023 ~

    JOHNCOOKDELIMEATS / SFOOD (CMO, COO) 2013~2023

    ARCHITECTURAL DESIGNER 2005~2012

    M.A (Master of Architect) 2005